옛 기술 질서에는 하나의 계급이 있었다. 이들은 만들기보다 문지기 노릇을 했다.
LinkedIn에서, YouTube에서, 컨퍼런스 클립에서 같은 유형이 돌아다닌다. 얼굴에 은근한 불만. 입에는 기술 전문 용어. 문장은 항상 같은 곳으로 향한다: “AI가 도움은 되지만 이것저것은 네가 알아야 해.”
문제는 이거다: 이 지식이 전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거다: 그걸 맥락에서 뜯어내 일종의 통행료처럼 쓴다는 거다.
창업자가 작동하는 데모를 내놓고 싶으면, 이들은 distributed systems를 설교한다. 사업주가 프로세스를 빠르게 하고 싶으면, 이들은 latency 강의를 한다. 디자이너가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싶으면, 이들은 “진짜 엔지니어링”이라며 문을 막는다.
사람이 결과를 얘기하면, 이들은 pipeline을 설명한다. 사람이 고객을 얘기하면, 이들은 memory 관리를 묻는다. 사람이 행동을 원하면, 이들은 시험을 낸다.
수년간 그들의 힘은 여기에 있었다. 설치가 어려웠고, 그래서 그들은 귀했다. 배포가 고통스러웠고, 그래서 그들은 중심이었다. 문서가 난해했고, 그래서 그들은 통역이었다. 통합이 망가져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사제였다.
이제 누군가 AI로, 에이전트로, 더 적은 팀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면 그들은 불안해한다. 처음으로, 수년간 지켜온 문이 의미를 잃고 있으니까.
그래서 새로운 힘을 정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이렇게 한다: 즉시 버그에 연결한다. 즉시 깎아내린다. 즉시 옛 세계의 결함에 묶어버린다.
“Edge case는 어쩔 건데?” “Scale 되면 보자.” “Production에선 그렇지 않아.” “Enterprise-grade가 아니야.”
사람은 이미 길을 나섰다. 넌 아직도 옛 세계의 입학시험을 들이밀고 있다.
이건 품질이 아니다. 이건 대부분 기술 문지기짓이다.
진짜 장인은 다르게 행동한다. “이건 돌아가네, 여기서 깨질 거야, 거길 보강하자”라고 한다. 문지기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겪은 고통을 안 겪었으면 진지하게 안 봐.”
바로 여기서 그들의 왕좌가 흔들린다. 처음으로, 수년간 입장료로 팔아온 고통이 필수가 아니게 되고 있으니까.
새 시대의 중심에 전문 용어를 가장 많이 아는 자가 서지 않을 거다. 버그를 가장 많이 늘어놓는 자도 아니다.
새 시대의 가치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아는 자, 불필요를 걷어내는 자, 의도를 최소 손실로 결과에 옮기는 자에게 쌓일 거다.
예언의 시대는 끝났다. 문지기의 시대도 끝나간다. 지금은 결과의 시간이다.